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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5

【정봉철 씨】 음식으로 통일을 꿈꿉니다

2014-10-24 뷰카운트34583 공유카운트18

여덟 살의 어린 소년은 살을 애는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소년에게는 한국에서 새롭게 시작할 새로운 삶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어느덧 스물 다섯이 된 청년은 이제 ‘북한이탈주민’라는 꼬리표 대신 남한과 북한의 음식을 전하는 요리사로 불리길 소망합니다. 꿈을 향해 멋지게 달려나가고 있는 정봉철 씨의 이야기입니다.


낯선 한국 땅에 적응하기

봉철 씨가 처음 북한을 탈출한 건 98년. 힘겹게 북을 탈출한 봉철 씨와 어머니는 중국과 동남아 여러 나라를 거쳐 2003년 10월 마침내 한국으로 입국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 정부의 도움으로 봉철 씨와 어머니는 부천에 정착하게 됩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제가 열 세 살이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으로 한국 정규 교육을 받기 시작했어요. 제대로 된 한국어를 못했거든요. 당시 아는 한국어라곤 제 이름 석 자뿐이었어요.”
중국에서 이렇다 할 학교를 다니지도 못한 채 한국에 들어올 날만을 기다리며 힘들게 살아온 봉철 씨는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조금 다른 말투와 억양을 가진 그였지만 반장도 맡으며 순조롭게 학교 생활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봉철 씨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어린 마음에 친구들에게 강하게 보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싸움을 잘하는 친구들하고 어울리기도 했죠. 그런데 사춘기가 오면서 친구들과 다투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경찰서에 오실 만큼 상황이 심각했어요.”
결국 봉철 씨는 고등학교 정규 과정을 끝내기 전에 학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신분을 벗어난 그는 공사판에서 노동도 해보고 이것 저것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1년 여간 방황을 하던 봉철 씨는 혼자서 경제활동을 하며 생활비를 마련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대안학교를 다니며 고등학교 과정 검정고시를 준비했습니다. 2012년엔 대학교에도 입학했습니다.


‘요리사’라는 꿈을 꾸다

봉철 씨는 안양에 위치한 한 대학의 호텔조리학과 학생입니다. 지금은 이론 교육을 끝내고 현장에서 실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봉철 씨가 언제부터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저와 어머니가 중국에서 살 때의 일이에요. 어머니께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밖에서 일을 하셨어요.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저녁을 차려 드린 적이 있었어요. 별 것 아닌 요리였는데도 아들이 차려주는 밥상을 본 어머니께서 어찌나 행복해 하시던지…. 그때가 처음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순간이었어요.”
이후에 봉철 씨는 행복해 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자주 요리를 하게 됐고, 그 때의 경험은 지금 봉철 씨가 ‘요리사’라는 꿈을 꾸게 된 이유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지방에 살고 있어서 자주 볼 수는 없지만 어머니 이봉녀 씨에겐 자신의 아들이 해 준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합니다.
“아들이 대구에 내려오면 여러 가지 요리를 해줘요.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우면서 만들 수 있는 음식 종류도 더 다양해지고 더욱 맛도 좋아졌어요. 아들이 만들어주는 음식은 다 맛있지만 전 매운탕이 제일 맛있더라고요.”
정봉철 씨의 어머니 이봉녀 씨는 아들을 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도전하는 청년 정봉철

요리를 공부하던 봉철 씨는 자신의 가게에서 자신이 만든 요리를 선보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됩니다. 무엇이든 시작하기 전에 경험을 쌓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봉철 씨는 작년 10월,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붕어빵 장사를 한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말리더라고요. 뭣 하러 사서 고생하냐고 말하는 친구들이 제일 많았어요.”
봉철 씨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책 속에서 배우는 지식 보다는 거리에서 직접 몸을 부딪히면서 배움을 얻고자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쌓은 경험으로 버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이런 자신감 뒤에는 봉철 씨의 노력도 숨어 있었습니다. 봉철 씨의 주요 타깃 고객은 출근하는 직장인. 붕어빵을 굽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던 봉철 씨는 새벽 6시부터 자리로 나가 붕어빵을 굽는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봉철 씨만의 판매 전략도 있었습니다. 호텔조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임을 강조해 ‘전문가가 만드는 붕어빵’ 이미지를 구축한 것입니다. 붕어빵에 들어갈 속 재료도 고구마, 호박, 감자 등 다양한 재료로 직접 만들었습니다. 봉철 씨가 만든 붕어빵은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붕어빵을 굽기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지나자 붕어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까지 생길 정도였습니다.
“너무 손님이 많아서 나중엔 제가 화장실도 못 갈 정도였어요.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해 난로도 피워놓고 기다리시는 동안 지루하시지 말라고 유머노트도 따로 만들어서 배치해 두었죠.”
솜씨 좋은 젊은 청년이 만들어낸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맛있는 붕어빵은 점점 인기가 많아졌고, 봉철 씨도 덩달아 신이 나서 더욱 열심히 장사에 매진했습니다. 새로운 요리를 배우고 싶던 봉철 씨는 저녁 시간엔 아르바이트생을 쓰면서 학원까지 다녔습니다. 장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음날 판매할 속 재료를 만들어야 해서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였지만, 지금도 봉철 씨는 그때 붕어빵 장사를 한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일 중에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한 뼘 더 넓어진 시야를 갖다

작년 가을부터 올해 초까지. 독특한 전략과 개성 있는 맛으로 승부한 ‘정봉철 표 붕어빵’ 덕분에 재료 값과 각종 비용을 빼고도 800만 원이라는 목돈이 생겼습니다. 봉철 씨는 이 돈을 또 다른 경험을 위해 사용하기로 결심합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음식을 체험해 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뉴욕, 라스베이거스 등 미국의 대표 도시를 여행하며 다양한 음식도 먹어보고 그들이 사는 모습과 문화를 눈과 머리와 가슴에 담았습니다.
“미국에 갔을 때 옷차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제 기준엔 꽤 쌀쌀한 날이었는데 어떤 사람은 두꺼운 점퍼를, 어떤 사람은 얇은 재킷을, 또 어떤 사람은 여름에나 입을 법한 짧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걷고 있었죠. 놀라운 건 사람들의 반응이었어요. 사실 반응이랄 것도 없었어요. 원하는 대로 입고 다니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였어요.”
봉철 씨는 한 달 동안 미국 여러 도시를 돌며 여행을 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도 했고,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먹어 보았고, 다양한 문화를 보고, 듣고,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한창 여행을 하던 봉철 씨는 운명적인 차 한 대를 만나게 됩니다.
“미국 여행을 하던 중에 독특한 푸드트럭을 알게 되었어요. 한 재미교포가 운영하는 푸드트럭이었는데, 불고기가 든 한국식 타코로 미국에선 아주 인기가 많았어요. SNS를 통해 언제 어디로 트럭이 오는지 알 수 있어서 사람들이 음식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것도 보았고요. 이 재미교포는 푸드트럭이 성공을 거두고 레스토랑 사업에도 도전했더라고요. 딱 제가 원하는 거였어요.”

운명적인 만남 기프트카

정봉철 씨가 기프트카를 처음 알게 된 건 이제 한 달 정도. 미국에서 푸드트럭을 새로운 창업 아이템으로 삼겠노라 다짐하고 난 바로 뒤의 일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기프트카를 알게 되자마자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 사업 계획을 세우고 지원을 해서 기프트카 시즌5의 두 번째 주인공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통일상차림’이란 모임을 만들었어요. 북한 요리도 배우고 친목도 다지고요. 기프트카로 새롭게 시작할 사업도 함께 하기로 했어요.”
인조 고기, 콩 고기 등 북한의 음식을 남한의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고 싶다는 정봉철 씨. 음식이라는 매개체가 있다면 통일이 되었을 때 함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다며 환하게 웃어 보입니다.
“북한에 알려주고 싶은 한국 음식은 양념치킨이에요. 북한 요리는 튀기기 보다는 주로 삶거나 끓이는 조리법이 많거든요. 그래서 치킨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해요. 라면도 알려주고 싶어요. 저만의 비법 양념도 함께요.”
사업을 시작하고 안정권에 접어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결혼을 하고 싶다던 정봉철 씨. 열심히 돈을 모아서 어머니와 처갓집 부모님도 함께 모시고 살고 싶다고 합니다.

인터뷰 내내 눈을 반짝이던 정봉철 씨. 꿈 많고 당찬 스물 다섯 살 청년이 기프트트와 함께 시작한 힘찬 첫 걸음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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