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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장경희 씨] 쓰디쓴 실패를 이겨내고, 맛있는 인생을 꿈꾸다.

2014-03-03 뷰카운트4882 공유카운트7





경기도 포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장경희 씨는 비록 물질적으로 풍족한 가정형편은 아니었지만, 화목한 가정 속에서 구김살 없는 밝은 성격의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형제가 많았던 까닭에 가족 안에서 자신의 역할과 그 역할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장경희 씨는 남들보다 조금은 일찍 철이든 어른스러운 아이로 자랐습니다.
본래 간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장경희 씨는 오랜 시간 슬픔에 잠기기보다 앞으로 4남매를 키워야 하는 어머니께 조금이라도 짐을 덜어드리자고 생각했습니다.



홀로 4남매를 키우게 된 장경희 씨의 어머니는 제대로 가정을 보살피기가 힘들었고, 결국 서울에 있는 친척들의 도움을 받으며 더불어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장경희 씨의 서울 생활은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대도시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고, 진지하게 진로에 대해 고민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패션디자인에 관심이 있어 관련 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던 장경희 씨는 형편이 어려운 가족들에게 대학에 가겠다는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사회인이 되어 일하고 있는 언니와 오빠, 그리고 엄마에게 기대어 대학에 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최대한 빨리 자립해서 하고 싶은 것들을 자신의 능력으로 해내자고 결심한 장경희 씨는 결국, 대학 입학시험도 보지 않고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장경희 씨는 지인의 소개로 유명호텔 식음료부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홀서빙을 하며 호텔용어와 문화를 배웠고, 이후엔 조리팀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호텔 음식 조리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창나이에 쉼 없이 3년 반 동안 열심히 일했던 장경희 씨는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잠시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짧은 휴식기간을 갖은 장경희 씨는 강남의 한정식집에서 오픈 멤버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음식재료 준비부터 서빙, 캐셔 업무까지 모든 부분을 관리하는 매니저로 일하면서 호텔 식음료부 일과는 또 다른 경험을 쌓아갔습니다. 당시 특급호텔 출신의 주방장을 고용하고 있었는데, 주방장이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자 한정식집 사장님은 장경희 씨에게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서 본격적으로 요리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직원들의 간식을 만들어주던 장경희 씨를 눈여겨봐 온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장경희 씨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100석 이상의 큰 한식집이어서 자격증은 물론 실력도 중요했습니다. 장경희 씨는 자격증을 따자마자 주메뉴를 포함해 밑반찬까지 총 마흔다섯 가지 정도 되는 한정식 메뉴를 전부 다 익히고 배웠습니다.



매일 칼을 만지다 보니 손에 굳은살이 배겨 주먹을 쥐기가 힘들 정도였고, 화덕에서 조리되는 요리를 모두 담당했었기에 화장은 꿈도 못 꿨습니다. 그렇게 7년이라는 세월 동안 누구에게도 의지 않고 앞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면서 그녀는 한층 더 강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경희 씨는 홀로 계신 어머니가 중풍이라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의 모든 삶을 정리한 후 포천으로 내려갔습니다. 살던 집과 재산을 모두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식당에서 일하며 지내시던 어머니를 곁에서 보살펴 드리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강하게만 보였던 어머니의 약한 모습에 장경희 씨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당장 포천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한 것은 없었지만, 어느덧 자신보다 더 작고 약해진 어머니의 곁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치료비가 만만치 않게 들었고, 경제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장경희 씨는 어머니 가까이에서 벌이가 될 만한 일을 모색했습니다.



장경희 씨가 운영하게 된 레스토랑은 생각보다 장사가 잘 됐습니다. 가족 모임을 하기에 좋은 분위기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손님이 무척 많았다고 합니다. 첫 사업임에도 성공을 거두게 된 장경희 씨는 어머니께 잘 나가는 딸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 자주 어머니를 모시고 식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장경희 씨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혼자 남게 된 장경희 씨는 경양식 집 문을 닫고 작은 언니가 사는 인천으로 떠났습니다. 인천 연안부두 인근에서 언니와 함께 치킨집을 운영하게 된 장경희 씨는 그때 나이가 서른다섯 살이었습니다. 그녀가 아직 혼자인 걸 알게 된 지인들은 그곳에서 수산물 판매업을 하는 한 남자를 소개해주었고 두 사람은 바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장경희 씨는 결혼한 후 남편 사업에 참여해 함께 일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려갔습니다. 그러던 중 IMF가 터졌고, 남편의 사업은 빚을 내지 않으면 계속 이어갈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장경희 씨 부부는 몇천만 원의 빚을 지고 수산물 판매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물론 장경희 씨마저 신용불량자가 되었습니다.
장경희 씨의 남편은 사업이 무너지자 다시 일어설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임신 중이던 장경희 씨는 스트레스로 인해 딸 지하를 8개월 만에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생활은 점점 힘들어졌고 남편에게만 의지할 수 없었던 장경희 씨는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몸으로 언니의 치킨집에 나가 일을 하며 적은 돈이지만 생활비를 마련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기 위해 길거리에서 어묵도 팔고, 포장마차도 해보고, 식당 일도 하며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장경희 씨는 언제나 혼자였고, 남편과 오랜 기간 별거 후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장경희 씨는 식당에서 일하며 아이를 홀로 키워갔습니다. 하지만 힘든 식당 일을 오랫동안 계속하며 몸은 약해질 대로 약해졌습니다. 갑상선기능항진증이 발병했고, 손목 인대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허리 통증도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건강상의 이유로 식당 일을 그만두게 된 장경희 씨는 상조회사에서 설계사로 일하게 되었지만, 경험이 일천한 탓에 매우 적은 수입으로 어렵게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신용불량자로는 일용직 근로밖에는 할 수가 없었던 장경희 씨는 건강까지 나빠지자 한동안 무기력한 상태로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지난 기프트카 주인공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상황에서 기프트카는 한 줄기 빛이 되어 장경희 씨의 인생을 비춰주었습니다. 기프트카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정형편 때문에 예고를 포기하고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한 딸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비록 예고를 가진 못했지만, 간절히 원하고 노력한다면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말입니다.



올해 일반 고등학교에 들어간 지하는 사실 예고를 지원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다양한 미술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고, 중학교 담임선생님도 지하에게 예고입학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지하는 입시 준비에 필요한 학원비가 부담되어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애니메이터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진 않을 거라고 합니다.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온 어머니께 하루빨리 도움이 되는 딸이 되고 싶다는 지하.
그런 기특한 딸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장경희 씨는 기프트카를 신청했습니다. 기프트카가 자신에게 열린 또 하나의 문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준비한 장경희 씨는 머지않아 기프트카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뛸 듯이 기뻤습니다. 기프트카를 어떻게 활용할까 하는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장경희 씨는 여전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도, 잘할 수 있는 일도 요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여러 번 실패와 좌절을 겪었지만, 장경희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아쉬움도 후회도 없다고 합니다. 장경희 씨는 힘들어 쓰러지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면 그 안에서 다시 일어날 힘을 얻을 수 있고, 다시 길을 모색해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데요. 장경희 씨가 해온 일도 그 형태는 매번 조금씩 달랐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요리’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장경희 씨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요식업을 놓지 않았고, 주변에 먹거리가 많지 않은 곳이나 학생들이 많은 곳에서 간단하면서도 든든한 한 끼 식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분식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기프트카라는 든든한 지원군까지 합세했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해내리라 각오를 다지는 장경희 씨는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꼼꼼히 시장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장경희 씨는 사업이 잘되면, 자신에게 희망을 준 기프트카처럼 자신도 나눔을 꼭 실천하고 싶고, 딸 지하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되면 즐겁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싶다는데요.
장경희 씨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기프트카가 응원합니다!


후기보기 ☞ http://gift-car.kr/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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