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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김용태 씨] 실패는 있다. 그러나 포기는 없다!

2014-02-03 뷰카운트4624 공유카운트0





대전 토박이로 살아온 김용태 씨는 딱 한 번 서울에 올라가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끔찍한 기억 때문에 김용태 씨는 아직도 서울에 가기가 꺼려진다고 합니다.
6살, 어린 나이였던 김용태 씨는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부족함 없는 평범한 가정이었습니다. 어린 김용태 씨에게 서울은 낯선 곳이었지만, 그는 밝게 뛰어 놀며 순박하고 착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의 차를 타고 나들이를 가던 중 김용태 씨 가족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김용태 씨는 다리를 심하게 다쳐 2년간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고, 결국 장애 6급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김용태 씨 가족은 사고의 아픈 기억을 서울 땅에 묻어둔 채, 다시금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왔습니다. 모든 시련을 잊고 행복한 가정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김용태 씨 가족이었지만, 그 소박한 꿈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서로를 향한 배려가 부족했던 그 때, 부모님의 말다툼 횟수는 날이 갈수록 더해갔고, 처음의 사소했던 갈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은 골짜기로 변해 두 분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그리고 김용태 씨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그의 부모님은 결국 각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김용태 씨는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일을 찾아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혼자가 되어버린 김용태 씨에게 그때의 외로움은 이제까지 인생에서 경험해본 적 없던 아픈 시간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느낄 수 없었던 수술부위의 통증이 혼자가 된 후 시시때때로 김용태 씨를 괴롭힐 정도였으니까요.

다행히도 지방에서 일자리를 구하신 아버지께선 매월 생활비를 보내주셨고, 김용태 씨는 그 돈으로 생활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외로움을 달랠 길은 없었습니다. 혼자 끼니를 때우는 것이 힘들어 가끔은 친구의 집에 넉살 좋게 들어가 식사를 해결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취생활을 하며 중?고등학교를 마친 김용태 씨는 졸업 후 부모님의 도움 없이 혼자서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러 공장과 식당을 찾아 뛰어다녔습니다.




김용태 씨의 첫 직장은 양식요리를 판매하는 레스토랑이었습니다. 처음엔 잦은 실수로 혼도 많이 났었지만, 일이 손에 익숙해지면서 주방 일도 틈틈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체력이었습니다. 교통사고로 다친 다리가 조금만 무리를 해도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다리에 찜질을 하며 밤새 끙끙 앓아야 했지만, 홀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무조건 참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일만 해오던 김용태 씨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23살 청년이었던 김용태 씨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예쁜 딸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꾸준히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양식조리사가 된 그는 아이를 키우기엔 부족한 월급이었지만,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열심히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김용태 씨의 굳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혼 4년 만에 부부는 남남이 되고 말았습니다. 김용태 씨에게 이 일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마주치는 주변의 시선들이 부담스러워지면서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김용태 씨는 아무 연고가 없는 곳에서 새로 출발하기 위해 아직 3살밖에 되지 않은 딸 아이를 안고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3년 동안 식당에서 열심히 일한 김용태 씨는 지난 10년간 레스토랑 양식 조리사로 일하며 모은 돈에 대출금을 더해 작은 김밥집을 차렸습니다. 첫 사업치고는 장사도 잘되었고 단골손님도 늘어갔습니다. 식당에서 놀고 있는 하나를 돌보면서 김밥을 말고 음식을 만들며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점점 안정되어 가는 느낌에 힘들어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그런데 김용태 씨가 가게를 연 지 2년쯤 되던 때에, 김용태 씨의 김밥집 주변에 경쟁업체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업종의 가게가 네 군데나 생기면서 매출은 급속도로 하락했습니다. 워낙 자리가 좋고 장사가 잘 되었던 터라 김용태 씨는 다가올 어두운 미래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김용태 씨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에 가게를 유지하려 노력하다 보니 그 동안 모아두었던 자금을 모두 다 써버렸고, 급기야 빚까지 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김용태 씨는 사업장을 정리하고 딸과 함께 다시 대전으로 돌아왔습니다.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김용태 씨는 대전의 지인들과 이미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되어 어느 곳 하나 기댈 곳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혹여 연락처를 알고 있더라도 결혼과 사업 실패, 청산하지 못한 빚을 안고 얼굴을 내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김용태 씨는 6개월에 가까운 기간 동안 외부 활동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며 어떻게 하면 다시 가장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김용태 씨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바로 딸 하나의 방과 후 학교를 지도하는 복지관 선생님이었습니다. 처음엔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김용태 씨는 혼자만 끙끙 앓고 지냈던 고민들을 하나 둘씩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한계에 부딪히게 했던 아픈 다리와 고등학생이 된 딸의 교육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젊은 나이에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산다는 것이 부끄럽고 싫었어요. 지금의 제 모습을 내보이기가 싫었거든요. 그런데 세상 가장 소중한 딸 하나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다 참게 되더라고요.”


김용태 씨가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으면서 집에서 딸과 대화하는 일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올해 고등학생이 된 하나는 아버지와의 대화가 몹시도 그리웠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다정하게 웃어주던 아빠의 목소리가 그리웠고, 번쩍 안아 올려주던 건강한 아빠의 모습이 그리웠습니다. 아빠 김용태 씨에게 딸 하나는 이제 곁에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딸아이가 좋아하는 것, 갖고 싶은 것 등 요즘 아이들의 관심사가 자기 때와는 많이 달라서 종종 무엇을 해주어야 할 지 막막할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가수가 꿈이라고 말하던 하나에게 보컬 레슨은커녕 그 꿈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 적도 없었습니다. 김용태 씨는 이제부터라도 하나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주어야겠다고 다짐하며 대리운전 일을 시작했습니다.



대리운전을 시작한 김용태 씨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장시간 이동을 해야 하거나, 오랜 시간 서 있어야 하는 일들은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딸이 원하는 것들을 해주기 위해 시작한 대리운전이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딸과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한창 사춘기인 딸아이를 조금이라도 곁에서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에, 김용태 씨는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알아보던 김용태 씨는 출장 세차가 자신의 체력을 고려할 때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대리운전을 하며 알게 된 고객들에게 출장 세차 일을 해주면서 서서히 직업을 바꿔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수입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대리운전으로 고객을 늘리고 있으니 출장 세차 고객도 더 많아지게 될 거라고 희망을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출장 세차의 기본이 되는 차량이 없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짧은 거리는 괜찮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 제법 먼 거리까지 찾아가 세차를 하고 돌아오면 다리에 힘이 빠져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 명의 고객이라도 놓칠 수 없는 직업인데, 차량이 없다는 아쉬움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그때 복지관에서 기프트카 라는 사업이 있는데 한번 도전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청서를 받아두고, 김용태 씨는 세상 앞에 자신과 하나의 모습이 알려지는 게 과연 좋은 것일까 하는 생각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딸 하나가 흔쾌히 찬성을 해주었고 그 용기로 함께 기프트카에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신청서를 접수하고 나자, 기프트카를 페이스메이커 삼아 아직 못 가본 인생길을 한 번 더 걸어가 보자는 의욕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나도 두려움 없이 자신의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처음엔 밖에 잘 나가지도 않았고, 사람들과 대화하기조차 쉽지 않았던 김용태 씨는 딸과 함께 행복한 삶을 꿈꾸며 세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리는 여전히 좋지 않아 수시로 무릎 찜질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예쁘게 웃는 하나의 얼굴을 보면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전력질주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기프트카의 주인공이 된 지금, 희망을 향해 기프트카와 막힘 없이 달리고 싶다는 김용태 씨의 꿈을 여러분도 함께 응원해주세요.


후기보기 ☞ http://gift-car.kr/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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