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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김도현 씨] 어제의 나를 돌이켜 내일의 희망을 꿈꾸다.

2014-01-02 뷰카운트1283 공유카운트0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김도현 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오게 되었습니다. 궁금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어린 김도현 씨에게 서울은 낯섦 조차 설렘으로 다가왔던 또 다른 세상이었다고 합니다.


패기와 에너지로 똘똘 뭉쳐있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김도현 씨는 '거칠 것 없었던 탄탄대로와 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합니다. 어떤 일이든 시도하지 못할 것이 없었기에 두려움도 걱정도 없었던 시절, 김도현 씨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국내 굴지의 주류회사에 취직하며 큰 어려움 없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입사 후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김도현 씨의 삶은 너무나 평탄하고 여유로웠습니다.
하지만 달콤하기만 했던 김도현 씨의 인생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국내 대기업으로 승승장구했던 회사가 외국계 기업으로 인수되면서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렸고, 김도현 씨 또한 평생직장이 되어줄 거라 믿었던 회사에서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뼈아픈 구조조정시기였죠. 퇴직 이후의 삶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젊은 시절을 다 바친 회사였기에 명예퇴직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어요. 한 순간에 회사라는 울타리에서 쫓겨난 기분이었고, 앞으로의 생활이 막막하기만 했어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자립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김도현 씨. 그러던 중 동대문에서 원단 판매업을 하시는 지인의 제의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원단 판매일은 처음이었지만, 하나씩 배워나간다면 못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12년간 몸담은 회사를 나올 때 받은 퇴직금을 투자해 원단 판매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고 합니다. 알아가야 할 것은 많았지만 배우는 재미와 돈 버는 맛에 힘든 줄도 모르고 김도현 씨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IMF라는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만나게 된 김도현 씨. 온 국민을 시름에 빠지게 했던 IMF는 김도현 씨의 인생을 비켜가지 않았고, 사업은 순식간에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벗어나 사회라는 더 큰 틀 안에서 처음으로 내민 도전장에 실패라는 판정이 내려지는 순간, 김도현 씨는 그제야 진짜 세상에 나온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다른 일거리를 찾아 다니던 김도현 씨는 우연히 들른 집 근처의 작은 식당에서 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밥을 먹기 위해 들렀지만 얼마 뒤부터는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아내 오선희 씨를 보기 위해서 식당을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식당 종업원인 줄 알았던 오선희 씨는 알고 보니 회사에 다니며 열심히 번 돈을 모아 자신의 점포를 연 사장님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낸 오선희 씨는 남편 김도현 씨를 만나기 전까지 쉬지 않고 일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묵묵히 일하는 모습도 좋았지만, 그보다는 힘들게 살아온 오선희 씨를 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김도현 씨.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자신과 결혼해 준다면 지금보다는 더 편안한 인생을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며 오선희 씨에게 청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식당에서 데이트를 하며 사랑을 쌓아가던 두 사람은 평생을 함께 살아갈 것을 약속하며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 후 김도현 씨는 공인 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해 지인과 함께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좋지 않아 손님이 많지 않았고, 동업자와의 마찰도 갈수록 잦아졌습니다. 결국 부동산 중개업에서도 실패를 맛보게 된 김도현 씨는 아내와 함께 고깃집을 차렸습니다. 아내의 응원과 함께 야심 차게 시작한 사업은 나름 성공적이었고, 손님들의 반응도 좋았습니다.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더는 일 하지 않게 해주겠다던 아내와의 약속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천사 같은 아내의 모습에 김도현 씨는 늦더라도 그 약속을 꼭 지켜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고깃집은 매일 발붙일 곳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김도현 씨의 가정도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김도현 씨의 어머니가 파킨슨병으로 쓰러지면서 간호할 사람이 필요해졌습니다. 부부는 어머니를 번갈아 돌보았고, 사업도 열심히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고깃집 운영에 매진하지 못했던 탓이었을까요? 김도현 씨 부부는 매달 나가는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결국 고깃집의 문을 닫기에 이릅니다.



계속되는 사업실패로 힘들어하는 김도현 씨에게 아내 오선희 씨는 지금은 어머니를 돌보는 데 힘을 쏟고, 안정되면 그때 다시 일어서자며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리광만 부리던 아들 병준이도 어느새 훌쩍 자라 김도현 씨를 응원해주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좋은 옷 한 벌 입어보지 못하고, 학원도 마음껏 다니지 못했던 아들 병준이를 보면 도현 씨는 늘 마음 한구석이 아렸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대학에 갈 때쯤엔 전폭적인 지원과 아낌없는 응원을 할 수 있는 멋진 아빠의 모습으로 우뚝 서고 싶었다고 합니다.



아들 병준이도 그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크면서 말썽 한 번 부리지 않았고 학교에서도 손꼽히는 우등생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바쁜 부모님 대신 할머님까지 돌봐드리는 기특한 아들이라고 합니다.


아프신 어머니와 대학입시를 앞둔 아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뛰어보기로 결심한 김도현 씨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김도현 씨의 눈에 기프트카가 들어왔습니다. 기프트카를 보자마자 김도현 씨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었던 북한식 빈대떡을 판매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김도현 씨 어머니의 고향이 바로 평양인지라, 보통의 빈대떡과는 다른 그 특별한 맛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김도현 씨는 꼭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김도현 씨가 기프트카로 판매하고 싶다는 빈대떡은 유난히 손맛이 좋으신 김도현 씨의 어머니가 자주 부쳐주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기름기 없이 담백하고 깔끔해 한번 먹으면 계속 먹게 되는 그 맛은 아직도 김도현 씨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었습니다. 확신을 갖고 기프트카 신청서를 제출한 김도현 씨는 서류심사와 면접심사를 거쳐 마침내 기프트카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기프트카를 인생의 마지막 기회로 삼아 최선을 다하겠다며 굳은 의지를 다지셨습니다.



김도현 씨도 이제 6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더 이상 일할 나이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김도현 씨는 젊은 마음으로 하루라도 빨리 일을 시작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내와 가족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고 싶어 하셨습니다. 계속되는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기프트카로 마지막 재기를 꿈꾸는 김도현 씨에게 여러분도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세요.


후기보기 ☞ http://gift-car.kr/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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