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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김재정 씨] 허기를 채우던 분식점에서 오인분의 행복을 노래하다.

2013-10-01 뷰카운트1447 공유카운트0



자신의 가난을 세 자녀에게 대물림 하지는 않겠다고 굳은 다짐을 하는 김재정 씨. 열심히 살아왔지만 정작 미래에 대한 준비 없이 당장 먹고 살기에만 급급했다며 지금까지 자신의 삶이 후회된다고 합니다.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맨손으로 서울에 상경했던 15살 소년의 패기 넘치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어요?




전남 함평군 가난한 광부의 손에서 자란 김재정 씨는 몸과 마음에 아픈 상처를 안고 태어났다고 합니다. 태어날 때 등에 혹이라도 난 듯 한곳이 볼록했었는데 그곳이 점점 꼽추처럼 변해갔던 것입니다. 결국, 어린 나이에 혹을 치료하기 위해 척추 수술을 받게 되었고 후유증으로 지체장애 6급 판정을 받게 됩니다. 가난한 형편으로 좋은 환경에서 치료를 받지도 못했습니다. 김재정 씨의 가정은 끼니를 걱정할 만큼 무척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일찍 아버님을 여의고 혼자 남은 김재정 씨의 어머님은 3남 1녀를 키우기 위해 품앗이를 해가며 어려운 살림을 꾸려 나가셨습니다. 그런 어머님을 돕기 위해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무작정 서울로 상경합니다.


서울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큰누나를 찾아간 김재정 씨는 작은 분식점의 일자리를 소개받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허기를 채우기 위해 들어간 곳이었기에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제빵 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일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고, 김재정 씨는 난생처음 무엇인가 이루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됩니다.


김재정 씨가 일했던 분식점은 일반 분식과 함께 제빵도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몇 년 후엔 분식 요리뿐 아니라 만두와 찐빵 만드는 기술까지 터득하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분식점 주방장으로 일하게 되었고 절로 보수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동안은 분식집에서 허드렛일밖에 못 했습니다. 심부름, 청소만 주야장천 했죠. 저한테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곁눈질로 하나, 둘 기술을 배워가게 됐습니다.”


한 달 월급 2만 원으로 시작된 분식점 일은 어느새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김재정 씨는 23살이 되었습니다. 흘러간 시간 동안 누나에게 꼬박꼬박 맡겨두었던 월급도 1.400만 원이라는 큰돈이 되어있었습니다. 서울 상경의 가장 큰 이유였던 어머니를 드디어 서울로 모셔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또한, 남몰래 꿈꾸어 오던 제빵사의 꿈을 조심스럽게 펼쳐보기로 합니다.



마침 유명제과점에서 프랜차이즈를 시작한다는 정보가 있어 면접을 본 그는 공채로 당당하게 합격하게 되었고 일반 사원에서 지점장까지 올라가며 자신이 꿈꾸는 분야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아갑니다. 드디어 1988년 26살의 나이에 10평 남짓한 가게를 얻게 된 재정 씨는 지금까지 신념처럼 지켜왔던 가족보다 일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얼른 돈 벌어서 호강시켜드리려고 했던 김재정 씨의 마음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갈기갈기 찢겼고 결국 일벌레처럼 살아온 지난날이 후회되어 첫 꿈이었던 제빵사업을 그만둡니다. 그리고 밤마다 눈물로 어머님께 사죄 드리며 한 번도 해 본 적 없던 방황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게를 정리한 후 남은 돈은 1억 5천만 원 정도. 때마침 찾아온 어릴 적 고향 친구의 권유로 재정 씨는 무역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전남 완도 양식장을 데리고 다니며 킹크랩, 전복, 가오리 등 수산물의 일본수출사업을 했고 그 그 사업으로 큰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사업장이 생기면서 여직원을 한 명 고용하게 되었는데, 그분이 바로 지금의 아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투자하는 돈에 비해 재정 씨에게 돌아오는 수입은 급속도로 감소했습니다. 분명 친구가 보여준 장부엔 흑자였는데 말입니다. 재정 씨는 친구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신뢰와 믿음으로 친구에게 투자금을 쏟아 부었고, 3년 후 재정 씨는 대출금과 카드 빚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집까지 넘어가며 가족에게 남은 건 길바닥인생뿐이었습니다.


남편인 김재정 씨와 16살의 나이 차이로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선택했던 아내 오세훈 씨는 남편의 무모함에 임신 우울증까지 겪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은데 전셋값까지 빼가며 사업에 투자하는 남편이 답답했다는 아내 오세훈 씨는 친구의 배신으로 무일푼 신세가 된 남편이 죽을 결심을 하는 걸 보고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끼니와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무작정 구청에 찾아가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김재정 씨 가족은 지금도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재정 씨는 위기 속에서 현명하게 대처한 아내를 보며 정신이 번뜩 들었다고 합니다. 특히 지금은 자활을 위해 낮엔 자활센터에서 일하며 밤엔 오토바이 배달, 새벽엔 주유소까지 하루에 4시간 잠을 자며 재기를 위해 달리고 있습니다.





아내 오세훈 씨는 매일 아이들과 함께 복지관을 다니며 독서지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동독서지도사 자격증도 준비하고 계시고요. 무엇보다도 남편 김재정 씨가 기프트카를 통해 청춘의 꿈이었던 주방장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어 무척 기쁘다고 합니다. 이런 아내에게 지난 26년간 분식점과 제과점 주방장으로 일하며 익혔던 기술들이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톡톡히 보여주겠다며 하시는데요. 이동분식집 사장님이 된 김재정 씨는 가족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되찾아주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약속하셨답니다.




김재정 씨의 아버지는 60년 동안 가난한 삶을 살아온 광부였습니다. 그리고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김재정 씨를 두고 훌쩍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랑스러운 아버지였지만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어린 나이에 가난을 물려주고 간 아버지의 무책임함이 원망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만은 대물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고마운 부인에게 빌딩을 사주진 못하지만, 지금보다 5%씩 매년 더 성장하겠다고 아내 앞에서 약속했습니다. 잘나가던 시절, 많은 돈을 벌었던 적도 있지만 지금 기프트카를 통해 벌고 싶은 건 돈보다는 사랑하는 가족들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김재정 씨. 현대자동차그룹 기프트카가 김재정 씨께 성공을 기원하며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후기보기 ☞ http://www.gift-car.kr/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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